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앞의 소녀들> : 색채의 하모니
행복한 가정의 정경 인상파 이래로 근대 회화의 역사는 전통적인 것에 대한 반역을 중요한 동력원으로 삼아 발전해 왔다. ****** 르누아르(Auguste Renoir)가 그려낸 세계에는 모든 사람을 매혹시켜 버리는 평화로운 빛이 있다. 보불전쟁과 파리코뮌 이래로 전쟁다운 전쟁도 없이 태평한 좋은 시절을 즐기고 있던 제3공화제시대 파리 시민들의 생활 감각에 그의 작품이 좋게 받아들여진 것도 당연하다고 여길 만한 행복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르누아르는 그 시민들의 취미에 부응하듯이 밝고 행복한 주제만을 그렸다. 색색의 꽃, 향기로운 과일, 따뜻한 태양이 비치는 풍경, 떠들썩하게 노는 젊은이들, 천진한 아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 건강하고 고운 피무의 젊은 처녀들, 풍만한 나부, 그것이 르누아르의 세계였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통속적인 주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시든 적 없는 르누아르의 인기의 적어도 일부가 그 통속성에서 오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통속적이라면, 르누아르의 작품은 통속적이라는 것이 결코 위대함을 방해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웅변적인 증거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이 <피아노 앞의 소녀들>을 살펴보자 자매인듯한 소녀가 피아노 앞에 사이 좋게 붙어 있다. 흰 드레스를 입고 파란 허리띠를 매고 금발머리에 같은 파란색 리본을 맨 동생인 듯한 소녀는 의자에 않아 한 손으로 악보대 위의 악보를 잡고 다른 한 손을 건반에 놓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목둘레에 흰 레이스 장식이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언니인 듯한 소녀는 그 옆에 서서 한쪽 팔꿈치를 피아노에 걸치고 또 한 손으로는 동생이 앉은 의자의 등받이를 잡은 채 동생의 연습하는 모양을 다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 언니의 느긋한 태도와, 입술을 반쯤 벌리고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연습하는 동생의 표정이 보여주는 대조는 서로 다른 소리로 이루어지는 화음처럼 미묘하게 잘 어울리는 가락을 연주한다. 이러한 음악적인 효과는 이 화면 곳곳에서 발견된다. 피아노 받침대에 소용돌이 모양의 장식무늬가 붙어 있다거나 악보대 옆 부분에 당초무늬 모양의 놋쇠 촛대가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이 피아노는 호사스럽다고는 할 수 없어도 상당히 훌륭한 것으로, 소녀들의 옷차림과 더불어 부유한 중류 계급의 가정임을 짐작하게 한다. 피아노 위에 놓인 꽃병이나 초록색 커튼 뒤로 보이는 실내가구 등도 그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구도의 리듬 이 그림 앞에 섰을 때 우리는 곧 이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우리는 이 흐뭇한 정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다. 귀를 기울이면 가만가만 두드리는 부드러운 피아노의 음색은 물론이고 소녀들의 고운 숨결까지 들려올 듯하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르누아르가 두 소녀라는 주요 모티프를 화면 가득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의 작품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첫째, 이러한 클로즈업 구도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는 군상 구도를 제외하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인물을 그릴 경우, 르누아르가 거의 언제나 모델의 모습을 상반신 기껏해야 무릎 아래 정도에서 잘라버리는 것은 매우 암시적이다. 이러한 구도는 당연히 화가와 모델을 금방 손이 닿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으로 만든다. 일찍이 르누아르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풍경이라면 그 속을 산책하고 싶어지는 그림, 나부라면 그 가슴과 허리를 쓰다듬고 싶어지는 그림이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는 벨라스케스나 베르메르처럼 단지 대상을 바라보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소년시절에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직인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도자기를 다루는 직인은 눈과 더불어 손의 감각이 예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인상파 시대의 작품을 제외하면, 그가 그린 나부들은 언제나 도자기의 표면처럼 미묘한 광채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소녀들의 드러난 팔뚝, 특히 비스듬한 언니의 두 손이나 피아노를 치는 동생의 오른손 등, 빛의 반사를 받는 부분은 촉촉이 젖어 그윽하게 빛나는 듯한 아름다움을 보인다. 르누아르는 소녀들의 이 팔을 그리면서 틀림없이 도자기 흙을 주무르는 장인과 같은 즐거움을 맛보았을 것이다. 이 소녀들의 두 팔은 화면 구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아노에 걸쳐진 언니의 왼팔 수평선은 피아노를 치는 동생의 오른손 수평선과 호응하고 비스듬하게 평행을 이루는 동생의 두 손은 그것과 역방향으로 역시 비스듬한 소녀들의 시선과 얽혀 대위법적인 효과를 보인다. 그 밖에도 느슨하게 기울어진 곡선을 보이는 배경의 커튼과 그 뒤편의 방에 걸린 몇 개의 사각그림, 당초무늬풍의 촛대와 펼쳐진 악보, 화면 오른쪽 아래 구석에 쌓인 몇 권의 악보와 피아노의 소용돌이 장식 등 곳곳에서 직선과 곡선이 복잡하게 섞여 르누아르 특유의 풍요로운 가락을 연주하고 있다.
색채의 하모니 그러나 이 작품의 따뜻하고 풍요로운 인상은 무엇보다도 그 색채에서 온다. 여기에서는 화면 중앙에 앉아 있는 소녀의 옷과 그녀 앞에 놓인 악보의 깔끔한 흰색을 빼면 거의 모든 부분이 녹색과 빨강과 노랑이라는 풍부하고 따뜻한 색조로 이루어져 있다. 두 소녀의 뒤쪽으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반쯤 젖혀진 두터운 비로드 커튼인데, 이 커튼은 짙은 녹색을 기조로 하면서 빨강 및 노랑의 반사를 보인다. 그 커튼 뒤로 보이는 실내의 벽이나 가구는 빨강을 주조로 하며 또한 벽에 걸린 그림틀의 노랑이나 그림 속의 녹색이 호응하고 있다. 뒤편 실내의 빨강은 서 있는 언니의 옷으로 이어지고 또한 동생이 앉아 있는 의자의 쿠션이나 오른쪽 아래 구석의 악보가 놓인 가구에까지 이어진다. 갈색으로 그려진 피아노도 불그스름한 기미가 있는 따뜻한 색채로 그려졌고, 또 마지막으로 그 피아노 위의 빨간 꽃이 녹색커튼을 배경으로 하여 강한 악센트를 더한다. 말할 것도 없이 빨강과 녹색은 보색관계에 있어서 서로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며, 화면 전체가 이 두 색을 기조로 하고 있는 것은 이 장면의 따뜻하고 싱싱한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하겠다. 게다가 화려한 금관 악기와 같은 노랑색의 울림이 더해지고 곳곳에 맑은 파랑의 장식음이 연주되어 전체적으로 풍부한 색채의 하모니를 퍼뜨리고 있다. 더구나 조금씩이지만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파랑이, 예컨대 노란색 꽃무늬가 있는 꽃병의 파란 바탕이라든가 동생의 금발머리를 묶은 파란 리본이라든가 금색으로 칠해진 의자 등받이와 파란 벨트라는 식으로 언제나 노랑 색과 짝을 이루어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파랑과 노랑의 산뜻한 조화가 화면을 다잡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르누아르의 화면은 특히 1880년대 이래로 풍부한 음악적 가락을 연주하고 있다. 아니, 인상파 시대의 유명한 작품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도 부드러운 태양 빛을 받으며 즐겁게 춤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지배하는 교묘한 소용돌이 모양의 구도는 경쾌한 왈츠의 리듬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풍성하고 화려한 색채의 빛과 도자기의 촉촉한 촉감 등 감각적인 즐거움에 대해 남보다 예민했던 르누아르가 여러 가지 악기가 가진 화려한 음의 울림에 이끌렸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실 르누아르에게는 이 <피아노 앞의 소녀들>과 같이 음악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적지 않다. ****** 인용 : 명화를 보는 눈, 206~212p
명화를 보는 눈 다카시나 슈지 지음 신미원 옮김 2002.12.17 초판인쇄 펴낸곳 ㈜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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